1. 개인정보보호 실무/판례·처분사례 해설

CCTV 영상, 보여주기만 해도 '제공'일까 — 대법원 2020도18397 판결이 그은 기준

marsyard 2026. 8. 29. 21:16

대법원 2024. 8. 23. 선고 2020도18397 판결 (개인정보보호법위반) 판결문 원문은 대법원 종합법률정보(glaw.scourt.g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리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와서 말합니다. 어제 저녁에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CCTV 좀 볼 수 있냐고요. 파일로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화면으로 확인만 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요청이 오면 담당자 머릿속에서 대개 이런 계산이 돌아갑니다. 복사해서 주는 건 안 되지만 잠깐 보여주는 정도는 괜찮지 않나. 어차피 파일이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확인만 하고 가는 건데.

대법원이 2024년에 이 계산에 답을 내놨습니다. 보여주는 것도 제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일

강원도 양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피고인은 어떤 사람이 자기를 도박으로 신고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장 관리실 직원에게 전날 촬영된 CCTV 영상을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직원은 빈소 내부에 설치된 CCTV에 찍힌 그 사람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재생해줬고, 피고인은 그 화면을 자기 휴대전화 동영상 기능으로 촬영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재판을 받은 사람은 영상을 본 쪽입니다. 직원이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권한 없이 이용하도록 제공했고, 피고인은 도박 신고 여부를 확인하려는 부정한 목적으로 그 개인정보를 제공받았다는 것이 공소사실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다뤄진 조문은 두 개입니다.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였던 자는 (…)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 개인정보 보호법 제59조 제2호

그리고 이를 위반한 자와 그 사정을 알면서도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를 처벌하도록 한 벌칙 조항입니다(당시 제71조 제5호). 이 사건에서 다퉈진 것은 뒷부분, 즉 피고인이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에 해당하는지였습니다.

 

1심 유죄, 2심 무죄

제1심은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인 춘천지방법원이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논리는 이랬습니다. 직원이 한 일은 영상을 재생해서 볼 수 있도록 해준 것뿐입니다. 피고인이 그 화면을 휴대전화로 찍기는 했지만 그건 직원 몰래 무단으로 한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직원으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몰래 촬영한 것은 직원이 제공한 게 아니라 피고인이 스스로 취득한 것이고, 시청 자체는 정보를 넘겨받는 행위가 아니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읽어보면 나름 설득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실무에서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요. 파일이 넘어가야 제공이라는 감각이요.

 

대법원이 그은 기준 — 지배·관리권의 이전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지배·관리권의 이전입니다.

영상이 담긴 매체를 전달받는 등 영상 형태로 개인정보를 이전받는 것 외에도, 이를 시청하는 등의 방식으로 영상에 포함된 특정하고 식별할 수 있는 살아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를 지득함으로써 지배·관리권을 이전받은 경우에도 (…)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에 해당할 수 있다.

무엇이 물리적으로 오갔느냐를 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파일이든 화면이든, 상대방이 그 정보를 알게 되어 통제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면 제공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론이기도 합니다. 영상 속 인물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를 알아버린 시점에서 이미 정보는 넘어갔습니다. 그 뒤에 파일을 가져가든 안 가져가든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오히려 파일 전달만 제공으로 본다면, 화면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조항이 무력해집니다.

 

현행법으로 옮겨 보면

이 사건에 적용된 것은 2020년 2월 4일 개정 전 조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효한 법리인지 확인해봐야 하는데, 그대로 유효합니다.

금지행위를 정한 제59조 제2호는 문언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처벌 조항은 구법 제71조 제5호에서 현행 제71조 제9호로 번호만 옮겨갔고, 내용은 동일합니다. 제59조 제2호를 위반해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제공한 자, 그리고 그 사정을 알면서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으로 제공받은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현행 제71조는 이들 행위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합니다. 조문 번호만 바꿔 읽으면 이 판결의 법리는 현행 사건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실무에서 무엇이 달라지나

열람 요청을 제공 요청과 같은 절차로 다뤄야 합니다.

CCTV 영상을 보여달라는 요청이 오면 대개 "복사본을 줄 것이냐"에 초점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판결에 따르면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도 같은 무게를 갖습니다. 열람 요청서를 따로 두고 있지 않다면 만들어야 하고, 이미 있다면 제공 요청과 같은 검토 절차를 태워야 합니다.

본인 확인과 권한 확인이 먼저입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건 직원이 요청자에게 그 영상을 볼 권한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영상에 찍힌 사람 본인이 자기 모습을 확인하겠다는 것과, 제3자가 남의 모습을 보겠다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후자라면 원칙적으로 안 됩니다.

현장 인력에게 이 기준이 전달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사건의 직원은 아마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파일을 준 것도 아니고 화면을 보여준 것뿐이니까요. 그런데 CCTV 열람 요청을 실제로 받는 사람은 개인정보보호 담당자가 아니라 관리실이나 매장이나 안내데스크에 있는 사람입니다.

교육 자료에 "영상 파일 반출 금지"만 적혀 있으면 부족합니다. 모니터로 보여주는 것도 제공에 해당할 수 있다는 문장이 들어가야 하고, 요청이 오면 어디로 연결하라는 창구가 지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열람 기록을 남깁니다.

누가 언제 무슨 사유로 요청했고, 누가 어떤 판단으로 처리했는지요. 나중에 문제가 되면 이 기록이 유일한 방어 수단입니다. 반대로 아무 기록 없이 보여준 사실만 남으면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함께 볼 것

CCTV 운영 자체에 관한 의무는 개인정보 보호법 제25조에 따로 있습니다. 설치가 허용되는 경우, 안내판 설치, 설치 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임의 조작하거나 다른 곳을 비추지 못한다는 것, 녹음기능 사용 금지 같은 내용입니다.

이 중 목적 외 이용이 문제된 사건은 CCTV로 직원 근무태도를 확인해서 징계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일까에 정리해뒀습니다. 이번 판결이 "누구에게 보여줬는가"의 문제라면, 그쪽은 "무엇을 위해 봤는가"의 문제입니다. 둘 다 CCTV를 운영하면 언젠가 마주치는 질문입니다.

'제공'이라는 개념이 어디까지 뻗는지에 관심이 있다면 개인정보 위탁과 제3자 제공, 뭐가 다를까도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판결이 제공의 방식에 관한 것이라면, 그쪽은 제공과 위탁을 가르는 기준에 관한 것입니다.

 

남는 것

이 판결은 파기환송입니다. 대법원이 원심의 법리 해석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이지 유죄를 확정한 것이 아닙니다. 환송받은 춘천지방법원이 이 기준에 따라 다시 심리하게 되고, 그 결과는 이 글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이 쓴 표현이 "해당할 수 있다"입니다. 시청하면 무조건 제공이라는 뜻이 아니라, 지배·관리권이 이전됐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봐야 지득한 것인지, 스치듯 지나간 화면도 포함되는지 같은 경계는 앞으로 사례가 쌓여야 잡힐 부분입니다.

다만 실무에서는 그 경계를 다투기 전에 절차를 갖추는 편이 쌉니다. 보여줄지 말지를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판단하는 구조라면, 그 판단이 어디에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참고

  • 대법원 2024. 8. 23. 선고 2020도18397 판결 (원심: 춘천지방법원 2020. 12. 9. 선고 2019노869 판결)
  • 개인정보 보호법 제59조 제2호(금지행위), 제71조 제9호(벌칙), 제25조(고정형 영상정보처리기기의 설치·운영 제한)
  • 법제처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솔로몬의 재판」 — 다른 사람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시청한 것이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행위에 해당할까요? (평결일 2025. 2. 16.) : 같은 판결을 일반인 눈높이로 풀어둔 자료입니다.
  • 조문 원문은 국가법령정보센터(law.g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